만찬의 참된 의미

( 2008년 7월 13일 형제나눔 )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리라."(요13:7)

 

요한복음 13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유월절 어린양을 잡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유월절에 우리가 '주님의 만찬'이라고 부르는 빵을 떼고 잔을 나누는 사건이 마태, 마가, 누가가 기록한 복음서에 거의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만찬'은 '침례'와 더불어 크리스챤이라면 마땅히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와 같이 중요한 사건을 자신의 복음서에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다른 세 복음서 저자가 기록하지 않았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요한은 만찬의 모습을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만찬에 대한 기록 대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을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선 본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때는 유월절 저녁 식사를 끝마칠 무렵이었습니다. 이제 마귀는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배반하여 넘겨줄 생각을 넣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 때가 이른 줄을 아셨습니다. 이제 자신은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할 줄을 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녁 식사를 하시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밖으로 나가 대야에 물을 담아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고, 몸에 두른 수건으로 그 발을 닦기 시작하셨습니다.

 

갑작스런 예수님의 행동에 제자들은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왜 이러십니까?'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저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자신의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예수님의 손에 맡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시몬 베드로 차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 없이 베드로의 발을 잡아 대야에 넣으려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분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베드로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르면, 발을 씻는 것은 종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손님으로 오신 분에 대한 정중한 예의로써 발을 씻겨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오늘 유월절 만찬 자리에 모인 열 두 명의 제자들은 아무도 발을 씻지 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유월절 만찬을 준비한 곳이 임시로 정한 장소였고 주인도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미루어 짐작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당시 관습에 따라 제자들 중 누군가가 나서서 발을 씻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차례가 온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절대로 내 발을 씻지 못하시리이다."

아마도 마음 속으로는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이건 아닙니다.' 하였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응답하셨습니다.

8절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

 

'네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은 KJV 본문을 보면, 'Thou hast no part with me'로서 직역하면, '너는 나와 함께 나눌 분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가지신 그 어떤 것도 베드로는 나눌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것을 함께 나누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체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를 모른다'는 표현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히 발을 씻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왜 지금까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아 왔습니다.

 

처음 동생 안드레의 초청으로 예수님께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게바'라 부르시며 소망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을 때,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셨고, 어느 날엔가는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였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였을 때 찾아와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게도 해 주셨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또다시 "이제부터는 네가 사람들을 낚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베드로를 포함한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신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막3:14)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줄기차게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손닿을 만큼 가까이 있다고 늘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상속하게 될 것이며, 장차 왕으로서 다스릴 것이라고 말씀해 오셨습니다. 베드로는 특히 12명 가운데에서도 첫째가는 제자로서 신임을 받아 왔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하고 가장 확신 있게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변화산에서 하나님으로서의 위엄을 가지신 예수님의 모습도 목격하였습니다. 야이로의 죽었던 딸을 살리시는 자리에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렇게 셋만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자신있게 말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께서는 '베드로, 네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의 발을 씻기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의 더러운 말을 씻으시는 것이 그 정도로 중요하단 말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왜 3년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한 번도 하지 않으시던 행동을 지금 하고 계신단 말입니까? 베드로의 머리는 복잡해졌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무식이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그분께 말하였습니다.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참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방금 전만 해도 절대로 자신의 발은 씻지 못하신다고 거부하더니,

이제 와서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 씻어 달라 하는 베드로의 단순함!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그만큼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그야말로 EVERYTHING! 모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상관 있는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목욕이라도 씻겨 달라면 옷을 벗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베드로와 같은 이런 절박함이 있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체면치레 같은 것은 헌 신짝 버리듯 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제 베드로에게만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미 씻은 자는 모든 것이 깨끗하므로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이렇게 말씀아신 것은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 이미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모두 씻어 주시고 옷을 입으신 뒤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니냐?"

(여러분은 아시겠습니까?)

이 질문 속에 담긴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애절합니다.

'너희가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알아야만 한다'는 애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과 주라 부르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니라. 그런즉 너희 주와 선생인 내가 너희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마땅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내가 너희에게 본보기를 주었느니라."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의 마지막 순서로 '주님의 만찬'을 제정하셨습니다. 빵을 받고 유다는 밤의 어두움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유다가 떠난 자리엔 예수님과 열 한명의 제자만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어쩌면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기 위하여 제자들의 발을 씻는 이상한 행동을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제자들과 나누었던 만찬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찬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부서지게 내어주시고 피를 흘리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찬은 예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기억하는 시간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몸과 피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발을 씻어 주도록 하기 위하여 먼저 행하신 것입니다. 요한1서 3:16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으므로 우리가 이로써 그분의 사랑을 깨닫나니 우리가 형제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 받은 침례가 단순히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가 매주 빵을 떼고 잔을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목욕을 하고 잠시 외출만 하더라도 우린 발을 씻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발은 쉬이 더러워집니다.

이처럼 우리가 새 생명을 받아 다시 태어났다 하더라도 이 세상을 사는 이상 우린 너무나 자주 더렵혀집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은 우리 발을 더럽게 합니다. 더렵혀지고 냄새나는 발은 옆에 함께하는 형제들을 부담스럽게 합니다. 짜증나게 합니다. 실망하게 합니다. 판단하게 합니다. 사랑할 수 없게 만듭니다. 함께 할 수 없게 합니다. 상관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린 얼마나 자주 형제의 더럽혀진 발 때문에 상처받고, 사랑의 관계가 깨지길 잘 하는지요! 그리고 애써 외면하고 무관심해 합니까? 관여하지 않으면 편해집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나도 그와 상관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댓가를 치르고 맺어진 형제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온 몸을 씻었으니 상관없는 것일까요?

 

우리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봅시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

"그런즉 너희 주와 선생인 내가 너희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가 서로 씻어 주지 아니하면 아무 상관이 없게 됩니다.

형제도 아닙니다.

거듭났다구요?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한 몸이라구요.

그래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관 없은 존재로 남는다면

이 얼마나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인지요.

생명의 주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으시면서까지 맺으려 하신 관계입니다.

 

만찬의 자리에서도 서로 등을 지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정말 이것이야말로 절대로 안됩니다.

 

우린 속으로 형제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왜 저러지?'

'발도 안 씻나!'

'최소한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면서까지 발을 씻어주신 적극적인 사랑!

우리 주님의 사랑은 부담스러운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는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상관 없는 관계가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