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딧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 백범 일지


나는 우리나라가 온 누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에 짓밟혀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짓밟는 것을 바라지 아니한다. 우리의 부는 우리의 삶을 넉넉히 할 만하고, 우리의 군사력은 남에게 짓밟히지 않을 만하면 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드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흐뭇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흐뭇함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온 누리 사람들에게 모자란 것은 군사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온 사람무리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흐뭇함 ← 행복 ; 사람무리 ← 인류)

사람무리가 이적에 괴로운 바탈 까닭은 어짊과 올바름이 모자라고, 너그러움이 모자라고, 사랑이 모자란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만 자라면 이적의 물질력으로 20 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무리의 이 정신을 키우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만 따라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뿌리가 되고, 목표가 되고, 본보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참된 온 누리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온 누리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사람무리 ← 인류 ; 이적 ← 현재 ; 괴로운 ← 불행한 ; 바탈 ← 근본 ; 어짊과 올바름 ← 인의 ; 너그러움 ← 자비 ; 온 누리 ← 세계, 세상)


홍익인간*이라는 우리나라의 한아비 단군*의 큰꿈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 겨레의 재주와 정신과 지나간 단련이 이 맡겨진 일을 하기에 넉넉하고, 나라 땅의 자리와 그 밖의 땅꼴새의 조건이 그러하며, 또 1차 2차 온 누리 큰 싸움을 치른 사람무리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의 서 있는 때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겨레붙이가 주연 배우로 온 누리 무대에 오를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사상의 자유를 누리는 정치판 짜기와 백성 가르치기를 오롯하게 갖추는 것이다. 내가 위에서 자유의 나라를 강조하고, 가르치기의 중요성을 마알한 것이 이 때문이다. 드높은 문화를 세울 겨레에게 맡겨진 일은 한마디로, 저마다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대한 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믿음을 얻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한아비 ← 조상, 국조 ; 큰꿈 ← 이상 ; 맡겨진 일 ← 사명 ; 땅꼴새 ← 지리 ; 온 누리 큰 싸움 ← 세계대전 ; 겨레붙이 ← 동포 ; 오롯하다 ←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이를 가는 사나움과 싸움의 정신을 키웠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미움의 싸움을 버리고 어울려 세우기를 일삼을 때다. 집안이 다투면 결딴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결딴난다. 겨레붙이 사이의 미움과 싸움은 결딴의 낌새다. 우리의 모습에서는 따스함이 빛나야 한다. 우리 나라 땅 안에는 언제나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 백성이 저마다 한번 마음을 고쳐먹음으로써 되고, 그러한 정신의 가르치기로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드높은 문화로 사람무리의 본보기가 되고자 하는 우리 겨레는 저마다 제 뚱속스러운 개인주의자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세차게 내세우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백성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겨레붙이에게 주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 마알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하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가진 집안 어른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한없이 주기 위함이다. 힘드는 일은 내가 앞서 하니 사랑하는 겨레붙이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이를 위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네가 좋아하던 인후지덕이란 것이다.
(결딴나다 ← 망하다 ; 결딴의 낌새 ← 망조 ; 뚱속 ← 욕심 ; 제뚱속 ← 이기심)

이러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산에는 수풀이 우거지고 들에는 온갖 열매가 푸짐하며, 시골 마을과 도시는 깨끗하고 넉넉하고 탈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겨레붙이, 즉 대한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얼굴에는 늘 따스함이 묻어나고, 몸에서는 덕의 향기를 낼 것이다. 이러한 나라는 괴로워지려 하여도 괴로워질 수 없고, 결딴나려 하여도 결딴날 수 없는 것이다. 겨레의 흐뭇함은 바이 서흐레 다툼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개인의 흐뭇함이 제뚱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서흐레 다툼은 끝없는 서흐레 다툼을 낳아서 나라땅의 피가 마를 날이 없고, 내가 제뚱속으로 남을 해하면 온 누리가 제뚱속으로 나를 해할 것이니, 이것은 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수다. 니혼*이 이번에 받은 앙갚음은 나라 그리고 겨레 사이에서도 그러함을 밝히는 가장 좋은 본보기다. 이제까지 마알한 것은 내가 바라는 새 나라의 모습의 한 쪽을 그린 것이어니와,
(바이 ← 결코, 전혀, 아주 ; 서흐레 ← 계급 ; 서흐레 다툼 ← 계급투쟁 ; 니혼 ← 일본)

겨레붙이 여러분! 이러한 나라가 될진대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네 자손을 이러한 나라에 남기고 가면 얼마나 흐뭇하겠는가. 옛날 치나* 땅의 기자*가 우리나라를 그리워하다가 왔고, 공자*께서도 우리 겨레가 사는 데 오고 싶어 하며, 우리 겨레를 어짊을 좋아하는 겨레라 하였으니 옛날에도 그러하였거니와, 앞으로는 온 누리 사람무리가 모두 우리 겨레의 문화를 이렇게 그리워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무엇보다 가르침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이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치나 ← 중국)

나도 일찍이 황해도*에서 가르치기에 몸 담았거니와 내가 가르치기에서 바라던 것이 이것이었다. 내 나이 이제 일흔이 넘었으니, 몸소 백성 가르치기에 몸 담고 있을 동안이 넉넉지 못하거니와, 나는 온 겨레의 가르침꾼과 남녀 배움꾼들이 한번 크게 마음을 고쳐먹기를 빌지 아니할 수 없다.
(가르침꾼 ← 교육자 ; 배움꾼 ← 학도,학생)

1947년
샛문 밖에서
백범 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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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님의 글을 삼가 조금 다듬었습니다. 본딧글은 위에 이어놓기에 이어 놓았습니다. ㅡ 마알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