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얼마에요?” “만원이세요.”
“이건 뭔가요?” “새로 나온 핸드폰이세요.”

요즈음, 물건을 사고 파는 이들이 서로 주고 받는 마알이다. 손님을 자주 대하는 이들 가운데 “-세요”를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 많다. 글쓴이는 저 마알을 들을 때마다 참 어색함을 느낀다. 어떻게 돈을 높이고 물건을 높이는가? 돈 님이시고, 물건 님이신가? 언제부터 우리 마알이 이렇게 변태스럽게 되었나?

물론 그 마알을 하는 이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들은 되도록 손님에게 친절하고 겸손한 마알을 하려다가 점점 높일 맞치(대상)가 아닌 것들까지도 높이게 되었을 터이다. 뒤에 “-요”를 붙이는 것만으로는 높여 드리는 티가 나지 않는다 여기는 것일 터이다.

이는 아마도 본디 스승의 아내를 뜻하는 '사모', 회사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사장' 따위를 여느 사람들에게도 붙여서 기분 좋게 해 주는 마알이 퍼져 버린 흐름과 비슷하다. 이는 알랑거리는 마알이다. 들어서 좋아하는 이나 그 마음을 노리고 추어주는 이나 모두 거짓되다. 우리 한국에 웬 스승님의 아내가 이다지도 많고, 회사를 꾸려가는 사장님이 이다지도 많단 마알인가? 참 야릇한 사회다.

물론 요즈음은 '사모'가 스승의 아내를 뜻하는 마알임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아주머니를 높이는 마알이라 여기고 그렇게 쓰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또한 본디 뜻을 알지만 마알의 뜻이 바뀌었다 여기고 그렇게 쓰는 이도 있을 터이다. 그러므로 '사모' 아닌 이에게 '사모'라 한다고 해서 마구 거짓되다고 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사모님'은 남의 아내를 가장 높이는 마알로 쓰이고 있으므로, 여느 아주머니를 추어주기 위해 '사모'라 일컫는 것은 그 바탕에 여전히 올곧지 못한 마음이 깔려 있다고 여겨진다.

무리(팀)를 맡지도 않은 이에게 '팀장'이라 하고 과를 맡지도 않은 이에게 '과장'이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 그것이 거짓임을 너도 알고 나도 알면서도 그렇게 서로를 거짓되게 부르는 거짓 사회가 이적의 대한민국·이다. 

이러한 거짓된 마음이 이제는 “만원이세요”, “핸드폰이세요”를 자연스럽게 마알하고 듣게 하는 변태 사회가 된 것이리라. 글쓴이는 “-세요” 이런 마알을 들으면 그 마알을 하는 이에게 그것이 잘못된 마알임을 홑지게 알려 주려 하지만, 한두 마디 가지고 마알귀를 알아듣는 이는 많지 않다. 

마알을 잘 못 알아듣는 이들을 붙잡고 십 몇 분씩 타이르시던 백-기완·님의 뜨거움이 존경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