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 한글·이 애지어지고 쓰이는 것을 기리는 날. 2006년부터 나랏기림날(국경일)로서 태극기를 닮.
  • 큰임금 세종 이-도· 님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펴낸 -9월 상순에서 끝날 곧 +10월 9일을 한글날로 매김.
  • 1946~1990년 까지 두루쉼날(공휴일)이었으나 1991년부터 2012년까지 두루쉼날이 아니었다가 2013년부터 나라쉼날(법정 공휴일)임.

※ 북배달·에서는 세종 이-도· 님이 훈민정음·을 알리친 +1월에서 15일을 잡아 조선글날로 매기어 기림.

 

몇 해 전인 2005년 12월 8일에 한글날이 나라기림날이 되어 제자리를 찾았다. 제구실을 못하고 절뚝거리는 가운데에서도 국회는 그날 여든여섯 가지 법률안을 본회에서 통과시켰다. 그 법률안들에는 고맙게도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들었는데, 그에 따라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에 한글날이 더해져 대한민국·의 나라기림날이 넷에서 다섯으로 늘었다.

 

《세종실록》에 1446년(세종 28년) -9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널리 펴냈음이 적혀 있다. 이에 따라 이적 한글-학회·인 1926년 조선어 연구회·와 신민사·가 그적 -9월의 마지막 날인 29일(+11월 4일)에 훈민정음 반포 여덟 회갑(480돌)를 기리는 잔치를 벌이고, 이 날을 ‘가갸글’이라는 그적 한글 이름에 따라 제1회 ‘가갸날’이라 일컬었다. 국어학자인 주-시경·님이 ‘한글’이라 일컬은 뒤 시나브로 ‘한글날’로 부르게 되면서 1928년 ‘한글날’로 이름을 바꿨다.

 

이처럼 음력(-) 날짜에 잔치를 했기 때문에 해마다 양력(+) 한글날이 바뀌었다. 1931년에 들어 와서 모든 나날살이가 양력을 바탕으로 삼는 데 견주어 한글날은 음력으로 지내는 것이 불편하다 하여 1446년 -9월 29일이 양력으로는 어느 날에 맞먹는가를 율리우스력에 따라 셈하여 +10월 29일로 매겼다. 그러나 예전에는 율리우스력을 쓰다가 1582년부터 그레고리력으로 바뀐 터무니에 따라 다시 셈하여 매긴 날짜가 +10월 28일이다. 그래서 1934년부터는 +10월 28일에 한글날 잔치를 치르게 되었다.

 

1940년 7월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드러났다. 이 책의 꼬리글(정 인지·의 해례 머리글)에 9월 상한에 썼다고 적혀 있어, 훈민정음·은 -9월 상순(상한)에 널리 펴낸 것으로 보인다. 1446년 9월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율리우스력으로 셈하면 +10월 9일이 된다. 1945년 +8.15 니혼·의 발 아래서 풀려난 뒤 +10월 9일을 한글날로 매기고 두루쉼날로 매겼지만 나라쉼날은 아니었다. 1949년에 이르러서야 한글날이 나라쉼날로 매겨졌다.

 

노-태우· 군부 정부는 1990년 11월, 나라쉼날이 너무 많아 경제 발전에 걸림이 된다는 터무니 없는 까닭으로 한글날을 국군의 날과 함께 나라쉼날에서 빼 버렸다. 그리하여 1991년부터 이적(2012년)까지 한글날은 쉬는 날이 아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모람들 모두는 2005년 10월 5일 ‘한글날 국경일 지정 촉구 결의문’을 그럼하여 매겼다. “우리 민족사에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인 한글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현재 국가 기념일로 규정되어 있는 한글날을 법에 의한 국경일로 높여 규정함으로써 한글의 독창성과 중요성을 드높이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고자 함”이 결의문을 낸 까닭이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2005년 11월 30일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열어 한글날을 나라기림날로 높이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은 2005년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는, 1990년 노-태우· 정권 시절 오직 경제계의 누를심에 따라 ‘노는 날’이 많다며 한글날을 나랏쉼날에서 뺀 뒤, 겨레 얼이 흐려질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서 ‘한글날을 국경일로!’ 운동을 벌인 지 15년 만에 맺은 열매다. 16대 국회 때도 같은 법이 발의됐으나 경제계와 행정부가 가탈부리고 국회는 성의가 없어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한글날이 나라기림날로 매겨진 것은, 한글-학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한글-문화-연대·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한글-세계화-운동 본부· 따위에서 길거리 서명운동과 청원, 공청회 등을 숱하게 벌인데다 신-기남·, 이-규택· 의원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그 뜻에 함께한 여러 분들이 애쓴 덕분이다. 심지어 그적 아흔 살을 바라보는 전-택부· 위원장은 대통령 김-대중· 님에게 호소하려고 청와대에 갔다가 거기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 절반이나 굳어서도 "나는 죽어도 좋으니 한글날은 살려 달라."라고 호소하는 책을 내며 소원하고 빌기도 하였다 한다.

 

그러나 나라기림날에 쉴지 말지는 대통령령으로 매기도록 돼 있어, 나라기림날이 곧 나라쉼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한글날은 나라기림날이면서 쉬지 않는 날이 되었다. 《각종기념일등에관한규정》에 따르면 한글날에는 문화 관광부·가 주관하여 “세종대왕의 성덕과 위업을 추모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선양하기 위한 행사를 한다”라고 되어 있다.


한글날은 노-태우· 군부 정부 덕분에 1991년부터 나라쉼날의 자리를 빼앗겼는데, 많은 이들의 애쓰신 맺이로 2006년부터 나라기림날이 되었고 2012년 11월 8일에 행정안전부·가 한글날을 나라쉼날로 매기는 내용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이제 2013년 부터 한글날은 비로소 나라기림날이자 나라쉼날이 되는 것이다. 한글단체 관련 많은 이들이 애쓰신 맺이이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에서는 큰임금 세종 이-도· 님이 훈민정음· 애짓기를 끝내고 신하들에게 알리친 1443년(세종 25년) -12월을 잣대로 해서 +1월 15일을 조선글날·로 매겨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