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괜찮은 글이 대학신문에 실려 있어서 이어 놓는다. (아래 이음매를 누르면 보실 수 있음)

 

영어 강의, 성균관, 패러데이 - 이 광근 교수


    그러나 글 내용 가운데 다음은 따져 볼 며리가 있는 마알이다.

 

“서울대생이라면 영어소통에 능해야 하는 것은 기본. 우리는 그 너머를 지향해야한다.”


    저 마알은 모든 서울대생을 안고 있으므로 학문을 할 서울대생도 당연히 안고 있는 마알이며 '서울대생'은 '뛰어난 학생들(?)'이므로, 학문을 하려면 영어소통에 능해야 한다는 뜻이 깔려 있다. 거기다가 그 너머를 지향해야 한다니... 물론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이 마알 소옥에는 다른 나라(특히 영어권)의 뛰어난 사람들 보다도 더 뛰어나야만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왜냐하면 영어권 학생들은 자신의 어마마알(모국어)로 생각하고 공부하고 고옴파는데 우리는 거기에 더해 영어소통에도 능해야 하고 어마마알과 잉글마알(영어), 이렇게 한꺼번에 두 마알로 생각하고 공부하고 고옴파야 한다는 나쁜 갖추새(악조건)가 있으니까.

 

    지금 세계의 흐름이 잉글마알(영어)에 무게가 실려 있음은 아님(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잉글마알을 잘 하면 그만큼 지식에 관하여 유리한 것 역시 아님할 수 없다. 그러나 잉글마알로 잘 소통하는 것이 학문을 하는 데 기본인지 아닌지는 다른 문제이다. 따져 볼 것 없이 그것이 기본이라고 매겨 놓는 것은 학문의 가능성을 미리 좁혀 놓는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아닐까 한다.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은 세 니혼* 사람에게 돌아갔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인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잉글마알을 잘 못 했다. 그래서, 스웨덴* 스톡홀름대*에서 열린 노벨상 기념강연에서 잉글마알*은 오직 강연을 비롯할 때 짤막하고 어색한 발음으로 “아이 캰 놋토 스피쿠 잉구릿슈(I cannot speak English: 난 잉글마알*을 못 합니다.)”란 한마디 뿐이었고, 그 뒤는 오직 니혼마알*로 강연을 했다고 한다. 1968년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뒤 40년 만의 니혼* 마알 강연이었다고 한다. 학문에서 잉글마알이 기본이라는 생각을 따져볼 터무니가 될 수 있는 일로 보인다.

 

    물론 저 글의 글쓴이가 마알하고자 하는 바가 '영어소통에 능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 글은 이마적의 일됨새를 매우 날카롭게 보고 짤막하게 잘 추려 준 고마운 글이다. 그러나 조금이지만 아쉬운 어섯(부분)이 껴 있는지라, 조금 들춰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