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움마알 (가다다 차례)

가리 ⇽ 논리
감마살 ⇽ 감마선
괭하다 ⇽ 투명하다
기운 ⇽ 에너지
⇽ 성질
깜냥 ⇽ 능력
꼴몬 ⇽ 물체
나톰 ⇽ 표현
낱사람 ⇽ 개인
됨새 ⇽ 상태
뜻결 ⇽ 개념
마당 ⇽ 장(field)
마주깔 ⇽ 상대성
맞질리다 ⇽ 모순되다
맞치 ⇽ 대상/상대
멈춤 바탈덩이 ⇽ 정지 질량
⇽ 물질
몬탈가알 ⇽ 물리학
몬탈스럽 ⇽ 물리적
무게마당 ⇽ 중력장
민버어렁 ⇽ 자유공간
바탈가알 ⇽ 철학
바탈덩이 ⇽ 질량
비롯 ⇽ 시작
서로끼침 ⇽ 상호작용
세엠값 ⇽ 수치
소옥새 ⇽ 내용
쓸림 ⇽ 마찰
알갱이 ⇽ 입자
옹글다 ⇽ 온전하다/완전하다
움질 ⇽ 운동
움질 기운 ⇽ 운동 에너지
있음치 ⇽ 존재
자리 ⇽ 위치/준위
자리 기운 ⇽ 위치 에너지
전자기마당 ⇽ 전자기장
제바탈 ⇽ 본질
지멸있다 ⇽ 성실하다
짜임가리 ⇽ 이론
튐깔 자리 기운 ⇽ 탄성 위치 에너지
틀새 ⇽ 형식/법칙

※ 물리학회* 물리 Q&A 글터에 올렸던 글(2002.09.12)을 마알* 실험을 위해 다시 손질하였습니다.

에너지-질량 관계, 빛의 질량 문제 - 나그네의 (아마도 진짜) 끝맺는 글
...
...건너 뜀...
여기부터는 물질, 곧 몬에 대한 나의 뜻결입니다. 몬탈가알스럽게 빈틈없이 다듬어진 것들이 아닙니다. 참고하시라고 올리는 것입니다. 이 글이야말로 그냥 글쓴이 낱사람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새겨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의 바탈가알스러운 뜻결도 섞여 있으므로 허술한 소옥새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운과 바탈덩이가 서로 맞바뀌는 것(아마도 세엠값의 맞바꿈을 몬탈스러운 것으로 아는 이들이 많은 듯합니다)이 아니라 제바탈이 같은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빛의 바탈덩이 문제: 빛은 멈춘 됨새의 바탈덩이(멈춤 바탈덩이)가 없는 것이지 달리고 있는 빛이 바탈덩이가 없는 것이 아님을 풀어드렸습니다.

첫째, 기운과 바탈덩이가 서로 (몬탈스럽게) 맞바뀌는 것이라면, 기운은 옹글게 남을 수 없는데, 맞바뀜을 우기는 이들도 모두, 기운은 옹글게 남는(보존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운은 옹글게 남게 됩니다(그들은 스스로 무슨 마알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운과 바탈덩이는 맞바뀔 수 없고, 맞바뀐다고 하면 맞질리게 됩니다.

또한 많은 이들이, 무릇 빛은 바탈덩이가 없는 깨끗한 기운이라고(순수한 에너지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대체 깨끗한 기운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깊이 깊이 되짚어 보십시오. 기운은 일을 할 수 있는 깜냥인데, 그러려면 몬탈스러운 서로끼침을 할 수 있는 깔이 있어야 합니다. 던져진 어떤 돌멩이가 날아갈 때 움질 기운을 지니는 것은 그것이 다른 것에 부딪쳐 끼침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돌멩이가 어떤 서로끼침도 할 수 없어서, 어떤 꼴몬이나 마당도 그냥 괭하게(?) 뚫고 지나쳐 간다면, 그것이 움질 기운을 지녔다는 것을 몬탈스럽게 알 만한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마알하면 그것은 움질 기운을 지닌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주의 어떤 꼴몬, 어떤 몬과도 서로끼침을 아니한다면, 그것은 몬탈스러운 있음이(존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있는 것이라면 얼스런(spiritual) 있음이거나 생각 소옥 있음일 뿐, 몬탈스럽게는 없는 것입니다.

기운들은 모두 제 나름의 꼴이나 깔로, 맞치와 끼침을 주고 받는 꼴새에서, 헤아리고 세엠하여 다룰 수 있는 있음치입니다. 제 있음을 내비치는 틀새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바탈덩이도 마찬가지로 제 있음을 나타내는 또다른 틀새입니다. 그래서 기운과 바탈덩이는, 있음을 드러내는 바탈스러운 깔에 대한, 조금 다른 두 눈에 비친, 조금 다른 뜻결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기운에는 움질 됨새로서 (몬탈스러운) 제 있음을 담고 있는 것이 있으며, 열의 꼴(이것도 따지고 보면 움질 됨새), 마당의 꼴, 빛(전자깃결)의 꼴 따위로 있음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늘어놓은 있음들은 움직임(달라짐)과 엮어 헤아려 보면 기운이요, 움직임에 맞서는 쪽으로 헤아려 보면 바탈덩이인 것입니다(이러한 나톰들은 이 글을 적으면서 생각해 낸 것이며, 깊이 따져 보지 못한 나톰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알갱이와 반대-알갱이가 만나 감마살 따위의 전자깃결로 바뀌는 것은 있음의 낱스러운 나톰 꼴이 바뀌는 것이지, 있음치가 더 늘거나 줄거나 한 것이 아닙니다(보존법칙). 그래서 있음의 바탈스러운 깔인 기운이나 바탈덩이는 달라질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빛은 전자깃결로 다른 몬과 서로끼침합니다. 빛은 낱스럽게 보면 전기마당과 자기마당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러한 서로끼침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빛의 바탈덩이가 없다는 마알이 많은 이들로 하여금 잘못 알게끔 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울친 마주깔 짜임가리의 바탕이 되는 가정에 따르면, 민버어렁에서의 빛의 빠르기는 모든 관성틀에서 늘 한결같은 빠르기 c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c보다 조금이라도 더 느리다면, 멈춤 바탈덩이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므로 멈춤 바탈덩이는 없지만 실제(유효) 바탈덩이는 있다는 것은 늘 c의 빠르기로 나아간다는 마알과 같은 것입니다.

이제 몇 사람이; “좋다 빛 기운이나 열 기운도 바탈덩이를 지니고 있다하자, 그러나 빛을 먹은 원자나 분자가 들뜬 됨새가 된 경우도, 기운이 (옮겨와서) 늘었으니까 바탈덩이도 (옮겨와서) 는다는 것인가? 기운 자리가 높아진 전자 껍질은 바탈덩이도 커진 것인가?”하는 궁금증이 있을 겁니다. 자리 기운이 늘면, 그 마당의 바탈덩이가 는다는 글을, 이미 저 아래 어디엔가 적어 놓았습니다. 저 아래에서는 무게마당에 대한 보기를 들었지만, 전자기마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게마당이나 전자기마당이나 마당 스스로가 바탈덩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몬 사이에 자리 기운이 바뀐다는 것은 곧 마당이 바뀐다는 마알입니다. 그것은 곧 마당의 바탈덩이가 바뀌는 것입니다(잘 이해가 안 되시는 분도 많으리라 짐작이 되지만, 여기에 대해 나는 더 풀어드릴 시간과 깜냥이 안 되므로, 알고 싶으신 분들은 지멸있게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생각실험이 재미있습니다. 쓸림이 없는 저울 위에서 용수철로 이어진, 바탈덩이가 같은 두 쇠구슬이 서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면서 떨고 있다 합시다. 두 쇠구슬의 움질 기운이 가장 클 때는 빠르기가 가장 빠를 때이므로, 빠르기에 따른 바탈덩이는 이 때가 가장 큽니다. 그러면 두 쇠구슬이 가장 멀어졌을 때나 가장 가까워졌을 때, 곧 멈춘 순간의 바탈덩이는 어떨까요? 저울의 눈금이 줄어들까요? 아닙니다. 저울의 눈금은, 여전히 쇠구슬이 가장 빠를 때와 같아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때는 두 쇠구슬의 튐깔 자리 기운이 가장 커서 그 자리 기운이 바탈덩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튐깔 자리 기운의 바탈덩이를 머금고 있는 것은 쇠구슬이 아니라 용수철입니다. 더 낱스럽게 말하자면 용수철을 이루는 철 분자들 사이의 자리 기운들이 가장 크며 그렇게 바뀐 분자들 사이의 전자기마당들이 바탈덩이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이제 튐깔 자리 기운이 줄어들면서 쇠구슬의 움질 기운이 늘어나기 비롯하면 용수철이 담고 있던 바탈덩이가 쇠구슬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모든 갈래의 기운은 바탈덩이이기도 한데, 그 크기는 그 기운을 \( c^2 \)으로 나눈 값입니다. 바탈덩이와 기운은 한 맞치에 대한 다른 나톰입니다. 깊은 생각 없이 빛은 바탈덩이가 없다고 여기시는 분은 느낌으로 공부하지 말고 올곧음과 가리로 지멸있게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안 하면서 감히 몬바탈가알을 한다고 하는 것은 몬탈가알을 모욕하는 지잇입니다. 느낌, 특히 직관으로 문제의 제바탈을 알아차리는 깜냥은 이미 수많은 가리로 하여 벼려진 무의식을 지닌 사람만이 지닐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파인만* 같은 갈래의 사람들이 그러한 깜냥을 어느 정도 지닌 이들입니다. 몬탈스러운 생각을 해보기 비롯한 지 얼마 안 되는 이들은 느낌에 기대면 몬탈가알 공부하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