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초가집; 어머니는 저녁과 새벽마다 아궁이에 나무를 때애 밥도 하고 방도 데우셨다.  불이 세에면 아랫목은 절절 끓었다.  불을 세에게 때앨 때마다 아랫목이 조금씩 타서 시커멓게 된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두꺼운 이불을 늘 펴 두어 방 바닥이 되도록 아니 식게 하였다.  그러고 아랫목 이불 소옥에는 뚜껑 덮은 밥그릇이 묻혀 있었다.  추운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따뜻한 아랫목 이불 소옥으로 어언 손과 다리를 넣어 녹이며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이미 불그릇이 자취를 감추고 있던 때여서 우리집에도 불그릇은 없었지만, 불그릇에 숯불을 피우는 집에서는 불그릇가아에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바암, 고구마, 감자, 떡, 옥수수 따위를 구워 먹었다.


학교: 겨울에는 교실 한가운데에 어김없이 불통이 자리했지만 웬만큼 춥지 않으면 불통은 제 구실을 못하고 차갑게 버티고 서서 자리만 차지하고는 하였다.  온도가 영하 3도 아래로 떨어져야 피우기를 비롯하는 것이 학교 방침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불통에 불을 지피면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불통가아에 모여 들어 이야기꽃을 피웠다.  물론 불통 위에는 도시락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도시락 소옥에는 밥이 타지 않도록 바닥에 김치를 깔고 그 위에 밥을 다암았다.  매앤 아래 있는 도시락이 뜨거워지면 빼내어 꼭대기로 올렸다.  낮 끼니 때 불통에서 데워진 따끈한 도시락을 가져다 열면 김이 모락모락 올랐고 가까운 벗들끼리 함께 먹었다.


교회당:  바닥은 마루였고 한가운데에는 불통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임이 비롯되기 전에 일찍 온 이들이나 모임이 끝난 뒤에 남아 있는 이들은 모두 불통가아에 모여들어 뜨거운 불통에 이야깃불을 피웠다.  몇 해 뒤에 불통이 더 새롭고 큰 것으로 바뀌자, 불통 앞에 마주선 사람들 사이도 불통 크기가 벌여 놓은 거리만큼 멀어지는 듯했다.  또 몇 해 뒤에 새로운 교회당이 크게 서고 불통을 스팀(기억이 또렷하지 않음)이 갈음하자 함께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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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불, 불통불을 위해서는 나무나 기름 따위의 때앨가암을 넣고, 불을 피우고, 살펴 보아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그러한 불들은 몬스러운(물리적) 열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따뜻하게 해 주는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스팀이니, 보일러니 하는 문명의 열매들은 편리를 주는 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 사랑을 빼앗아 가는 듯하다.  이미 오래 전에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는 사랑이 식는다 하셨다.   문명이 주는 편리가 남을 생각할 드팀새를 막아 제뚱속을 부추기는 것이 그 까닭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