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책*의 '머리 덮개'는 '머리털'인가 '쓰개'인가?



풀빛 글씨 위에 쥐돌이 더듬이를 올리고 조금 있으면 도움마알이 뜹니다.



2. 고린도전서 11:2~16 풀이



먼저 오른쪽 도움마알을 참고하면서 마알씀의 흐름을 잘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http://maal.kr/xe/?mid=saegimjil&page=1&document_srl=34839&act=dispBoardWrite

고린도전서 11 장
도움마알
1 내가 크리스트*에게 딸려 있듯이 그대들은 내 따름꾼이 되시오.
2 이제 내가 그대들을 추어 줌은,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모든 일에서 나를 떠올려 내가 그대들에게 전해 준 대로 그 틀울들을 지킴이외다.
추어 주는 마알씀
3 그러나 나는 그대들이 알기 바라노니, 수이마다 그 머리는 크리스트*요, 암이의 머리는 수이요, 크리스트*의 머리는 하나님*이시외다.
※ 뼈대 마알씀
주*님-수이-암이 사이의
걸림새 때문에
빌거나 앞마알할 때
암이는 덮어야 하고
수이는 덮지 말아야
4 수이로서 머리를 덮은 채 거나 앞마알하는 이마다 제 머리를 욕보임이외다.
5 그러나 암이로서는 머리를 아니 덮은 채 거나 앞마알하는 이마다 제 머리를 욕보이는 것임은 그것이 그미가 밀린 것과 다름없는 까닭이외다.
6 암이가 덮이려 않거든 그미로 하여금 또한 깎이게 하되 암이로서 깎이거나 밀리는 것이 부끄러움이 된다면 그미로 하여금 덮이게 하시오.
7 수이는 참으로 머리를 덮어서는 아니 됨은 그가 하나님*의 그으리매빛쁨이기 때문이지만, 암이는 다만 수이빛쁨이외다.
8 수이암이에게 딸려 있지 않고 암이수이에게 딸려 있는 까닭이외다.
9 또한 수이암이를 위해 생그이지 않고 암이수이를 위해 생그인 까닭이외다.
10 이런 터무니암이는 천사들 때문에 머리 위에 기운을 두어야 하외다.
11 그러함에도 주* 안에서는 암이 없는 수이도, 수이 없는 암이도 없소이다.
※ 덧붙이는 마알씀
그러나 주* 안에서
암수이는 서로에게 있음의 바탕임.
12 암이수이에게 딸려 있듯이 수이 또한 암이로 하여 있되 모든 것은 하나님*께 딸린 까닭이외다.
13 그대들 스스로 판가름하시오: 암이가 아니 덮고 하나님*께 비는 것이 어울리오이까?
※ 덧붙이는 마알씀
제바탈도 뼈대 마알씀을
뒷받침함
14 수이에게 긴 머리털이 있으면 그것이 그에게 부끄러움임을 제바탈 스스로도 그대들에게 가르치지 않소이까?
15 그러나 암이에게 긴 머리털이 있으면 이는 그미에게 빛쁨이니, 머리털이 하나의 덮개로서 그미에게 주어짐이외다.
16 비록 누가 가랠 일로 여길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그러한 내리버릇은 없소이다.
※ 마무리 마알씀
덮는 문제는 가램거리가 아님.
17 이제 내가 밝히는 이것으로는 그대들을 추어주지 않노니, 이는 그대들이 함께 모이는 것이 더 좋지 않고 더 나쁨이외다.
※ 나무라기의 비롯
16절까지는 나무라는 마알씀이 아니었음이 또렷함.



풀이

2 절:
바울*님이 자신이 전해 준 틀울들을 고린도* 교회 거룩님들이 잘 지키고 있음을 추어주고 있습니다.

3 절
더불어 암이-수이-크리스트*-하나님* 사이의 걸림새암이의 머리는 수이이고 수이의 머리는 크리스트*이며 크리스트*의 머리는 하나님*이심을 알기 바란다고 바울*님은 적고 있습니다.

4~10 절
이러한 암이-수이-주*님 사이의 걸림새 때문에 주*님께 거나 앞마알하기 위해서는: 수이는 제 머리에 덮개를 덮어 써서는 안 되며, 암이는 제 머리에 덮개를 덮어 써야 합니다. 그런데 왜 오직 거나 앞마알하는 됨새에 대해서만 머리에 무엇을 덮으라/말라 하셨을까요?
거나 앞마알을 하는 것이 어떠한 일됨새이기에 그럴까요?
먼저 빌기를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따아들 때 하나님*은 그를 눈여겨 보고 귀 기울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 있는 됨새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있는 꼴됨새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앞마알을 생각해 봅니다. 앞마알이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마알씀을 알리치는 것이므로 하나님*이 눈여겨 지켜 보시겠지요. 그러므로 앞마알을 하는 됨새도 역시 하나님* 앞에 있는 꼴됨새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머리카락 개수까지도 세시는 하나님*(마태복음10:29~34, 누가복음12:6~7)이 우리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다 보고 계시지만, 이 두 갈래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특별히 눈여겨 보시는 꼴됨새, 하나님* 앞에 있는 꼴됨새이므로 암이-수이-크리스트*-하나님* 사이의 걸림새에 따른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렇게 거나 앞마알하는 경우(하나님* 앞에서); 수이는 제 머리를 덮어서는 안 되며 암이는 덮어야만 하는데, 그렇게 아니하는 것은 제 머리를 욕보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나아가, 암이가 덮개를 안 쓰려 하면, 안 쓰는 그 지잇과 더불어 머리털을 깎아(또는 밀어) 버리라고까지 하십니다, 그것이 부끄러운 줄 안다면 덮어 쓰라는 것이지요.

수이는 하나님*의 그으리매빛쁨이기 때문에 거나 앞마알할 때, 곧 하나님* 앞에서는 제 머리를 덮지 말고 드러내야 하는 것이요, 암이수이를 위해 생그였으며 하나님*의 빛쁨이 아니라 수이빛쁨이기 때문에 모두를 생그신 그분 앞에서는 제 머리를 드러내지 말고 덮어야 합니다.

이러한 터무니에 바탕하여 암이는 천사들 때문에 머리 위에 기운을 두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천사란, 하나님*이 부리시는 로서 구원의 물려받이가 될 이들에게 시중들라고 보내진 입니다(히브리서 1:14). '머리 위에 기운을 두'는 것은, 글 흐름새를 볼 적에 '머리 위에 덮개를 두'는 것의 다른 표현이므로, 암이의 머리 덮개는 '기운'을 뜻비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암이는 덮개를 머리 위에 둠으로서 (수이의) 기운 아래 있음을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고루차례스러운 일됨새에서 하나님*의 천사들은 거룩한 암수이들의 시중을 들고 그들의 을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겠지요(계시록8:3,4).

빌거나 앞마알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아니 적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거룩책*에서 마알씀하신, 거나 앞마알하는 경우가 아니면, 주어진 됨새를 스스로 (믿음에 따라) 판가름하여 지잇하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11~12 절
그러나 주* 안에서는 암이수이가 서로에게, 생겨난 까닭이며, 불쑥하게 외따로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13~15 절
바울*님은 이제까지 거나 앞마알할 때 수이는 머리를 덮어서는 안 되고 암이는 덮어야만 한다고 힘주어 마알하며, 그것은 생금 고루차례에 따른 것이며 천사들 때문이라고 잘라 마알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13~15 절에서는 스스로 판가름해 보라고 열어 놓고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면 제바탈조차도 위의 하라치를 뒷받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긴 머리털은 하나의 덮개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머리털은 몸의 한 어섯입니다. 그러므로 머리털이 길면 머리가 늘 덮개로 덮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덮여서는 안 되는 수이로서는, 그 느낌이 마땅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긴 머리털이 부끄럽지만, 하나님* 앞에서 덮여야 하는 암이로서는 그 느낌이 마땅스러울 뿐 아니라 그 마땅스러운 느낌을 주는 머리털이 몸의 한 어섯이기 때문에 오히려 빛쁨이 되는 것 같습니다. 15 절에서 ”그미의 머리털이 하나의 덮개로서 주어지기 때문”이라는 마알씀만 보면, 빌거나 앞마알하기 위한 덮개로 삼으라고 암이에게 (긴) 머리털을 주셨다는 마알씀으로 잘못 헤아려 암이가 덮어 써야 할 덮개가 그미의 머리털 자체라고 아퀴 짓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15 절은 암이의 머리 덮기에 대한 아퀴가 아니라 덧붙이는 마알씀임을 잊지 마십시오. 머리털은 암이뿐 아니라 수이에게도 주어진 것이며 또한 주어진 것은 '긴 머리털'이 아니라 '길게 자랄 수 있는 머리털'입니다. 수이암이에게 서로 달리 주어진 것은 머리털이 아니라 머리털에서 받는 느낌, 곧 제바탈입니다. 그래서 제바탈도 가르치지 않느냐 하신 것입니다.

글의 흐름새로 볼 적에 15 절 마알씀은, 암이에게 긴 머리털은 빛쁨인데, 이는 그것이 마치 하나의 덮개와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는 마알씀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풀어 적은 대로 머리털은 덮개 (느낌을 주는) 구실을 할 뿐이지 덮개 자체는 아닙니다. 이에 대한 더 많은 터무니는 다음 번 글로 올리고자 합니다. 여기서는 사북만을 추려서 적습니다.

'암이의 머리 덮기'의 까닭뜻녘은 3~10 절에 있습니다. 특히 7 절을 조금 더 풀어서 적으면, 수이가 참으로 머리를 덮지 말고 드러내야 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그으리매빛쁨이기 때문이지만, 암이는 다만 수이빛쁨이기 때문에 드러내지 말고 덮어야 한다는 마알씀입니다. 그런데 15 절에서는 암이에게 긴 머리털은 제게 빛쁨(자랑)이 된다 했습니다. 이는 제바탈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7 절 마알씀에서 하나님의 빛쁨(수이)은 드러내야 하고 수이빛쁨(암이)은 덮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15 절의 암이빛쁨(긴 머리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뻔하겠지요. 마땅히 덮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빛쁨만 드러내야 합니다. 15 절이 암이빛쁨암이의 긴 머리털이 덮개라서 하나님 앞에서 드러내야 한다는 마알씀이라면 앞뒤가 안 맞고 맞질리게 됩니다. 암이의 머리털도 암이의 한 어섯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16 절

거나 앞마알을 할 때, 수이는 머리에 덮개를 덮어 쓰면 안 되고, 암이는 덮어 써야 한다는 마알씀에 대해 누군가 그럼 못하고 가램거리로 여길지라도, 사도들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그러한 내리버릇은 없었다고 합니다. 다시 마알하면 머리 덮기는 가램거리가 아니라는 마알씀입니다(로마서 2:8, 디도서 3:9).

17 절
2 절에서 바울*님은 그가 고린도인들에게 전해준 틀울들을 그들이 잘 지키고 있다고 추어 주었습니다. 뒤이어 16 절까지, 덮는 문제를 자세히 풀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17 절에 와서 이제 밝히는 문제로는 추어 줄 수 없다(나무란다)고 합니다. 이로 보아 3~16 절이 나무라는 마알씀이 아니었음을 더 또렷이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고린도인들이 암이의 덮기도 큰 탈 없이 바울*님이 전해 준 대로 잘 하고 있었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탈이 생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요즈음 시대를 보면 또렷해집니다).

아무튼 3~16 절은 암이의 머리 덮기에 대한 속 뜻을 일러 주는 마알씀일 뿐, 나무라는 마알씀은 없습니다. 이 17 절에 와서야 이제 나무란다고(추어 주지 않는다고) 알리치는 마알씀을 보니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에 이교도의 끼침으로 머리를 짧게 깎은 암이들이 있어서 이 마알씀을 주셨다는 내세움은 터무니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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