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책*의 '머리 덮개'는 '머리털'인가 '쓰개'인가?



풀빛 글씨 위에 쥐돌이 더듬이를 올리고 조금 있으면 도움마알이 뜹니다.




몇 가지 머리털 내세움과 그에 대한 되가리


이제까지 고린도전서 11:3~16에서 암이가 덮어야 할 덮개가 그미 자신의 머리털이라는 내세움이 터무니 없음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 밖에 머리털 내세움의 맞질림들을 짚어 봅니다. 앞의 글과 겹치는 소옥새들도 있습니다.


1. 내세움: 덮개란 긴 머리털이므로 암이는 머리털이 길기만 하면 되고 수이는 짧기만 하면 된다.


되가리: 그러면 머리털 짧은 수이덮천 따위를 쓰고 있어도 됩니까? 그것은 덮은 것이 아닙니까? 또한 암이덮천을 쓰고 있어도 머리털이 짧으면 덮은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마알입니까? 덮어도 덮지 않았다는 마알입니까(놀랍게도 머리털을 내세우는 어떤 이는 이렇게 우겼습니다)? 바울*님 글에서는 다만, 암이는 덮은 채 라 하셨지, 어떤 것을 콕 집어 그것으로 덮으라 하시지 않았습니다.


머리털 길이에 대한 판가름은 아리송합니다. 마땅히 그러하게 거룩책*에도 그 길이의 기준은 없습니다만, 덮은 꼴됨새와 안 덮은 꼴됨새는 뚜렷하게 가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머리털 길이의 문제라면 어중된 길이일 때 덮었다고 보아야 할지 안 덮었다고 보아야 할지 누가 판가름해서 타이를 수 있겠습니까? 어떤 자매의 머리털을 보고, 한 형제는 수이 머리털 길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수이 머리털 보다는 긴 길이라고 한다면, 한 형제의 눈에는 안 덮은 것이고 다른 형제의 눈에는 덮인 것입니까? 그러면 주*님은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머리털을 길게 기를 수 없는 검사람 암이들은 또 어떻게 됩니까? 바울*님이 검사람 암이들의 머리털 문제를 몰랐단 마알입니까? 아니면 깜빡 잊어서 빼먹었단 마알입니까? 바울*님은 실수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러한 글을 그냥 거룩책*으로 주실리 없습니다.


2. 내세움: 까까머리나 스포츠 머리의 이교도 여사제 끼침으로 고린도* 교회에 수이처럼 머리털 짧은 암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님이 그 암이들을 향해서 머리털을 길러 덮으라 마알씀하신 것이다.


되가리: 까까머리 여사제 끼침을 받았다면 왜 까까머리가 아닌 짧은 수이머리의 암이들만 그 교회 안에 있었다고 합니까? 또한 마알씀에는 제 머리를 욕되게 하는 짓에 대해 암이만 아니라 수이에 대해서도 적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이들 가운데서 암이처럼 머리가 긴 사람이 있었다는 마알입니까? 암이가 이교도 여사제 끼침으로 머리를 짧게 했다면 수이는 무슨 끼침으로 머리를 길렀겠습니까?


수이암이든 그렇게 제바탈을 어기고 있는 사람이, 더욱이 이교도의 끼침을 받아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고린도* 교회에 있었다는 것은 거룩책*에서 그 터무니를 찾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면 바울*님 글은 제바탈을 어기고 있는 이들에게 스스로 판가름해 보라며 제바탈을 빌어 호소하고 타이른다는 마알이 됩니다. 앞뒤 안 맞는 두동진 이야기가 됩니다.


3. 내세움: 덮개가 덮천이라면 또렷이 '덮천(veil)'으로 덮으라는 마알씀이 있어야 하지만, 그 낱마알이 아예 없는 것은 덮개는 긴 머리털이기 때문이다.


되가리: 덮개로는 '덮천'이 바람직하겠지만, 꼭 그것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살펴 보았듯이 옛 유언*에서도 덮개에 대해 거의가 그것이 무엇인지 집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글의 흐름에서 덮개가 덮천 따위의 쓰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덮개는 마땅하게도 쓰개이지 머리털이라고는 생각할 거리가 없는 일됨새에서 덮개가 무엇이냐 하는 소옥새를 마알씀하실 까닭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덮거나 안 덮은 것이 또렷이 드러나는(머리털로는 또렷이 드러나지 않음) 것이지 덮개의 모습이나 자료가 아닙니다. 오히려 덮개의 본보기 하나를 집어 주시게 되면, 덮개의 갈래가 울쳐지고 마알씀의 무게가 '덮음(또는 안 덮음)'에서 '덮개'로 기울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알씀의 뜻녘이 흐려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덮천으로만 덮어 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자 따위의 쓰개도 덮어 가리는 구실을 합니다. 수이가 모자를 쓰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 거나 그분의 마알씀을 앞마알하기에 앞서 모자를 벗어야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덮개'를 굳이 '덮천(veil)'이라고 적어 주실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4. 내세움: 머리 덮기의 아퀴는 13~15 절이다. 특히 “암이의 머리가 덮는 것으로 주어졌음이라”는 마알씀을 볼 때, 앞에서 덮으라 함은 결국 머리털로 덮으라는 마알씀이었다.


되가리: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스스로 판가름해 보라며 제바탈에 기대는 이 글도막아퀴가 아니라, 바울*님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덧붙인 마알씀입니다. 여기서 하나 더 살펴 봅니다. 또한 “for her hair is given her for a covering”을 “이는 암이의 머리가 덮는 것으로 주어졌음이라”고 뒤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이 워얼에서 중요한 'a'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a'를 살려 뒤치면 '하나의 덮개로서'가 되는데, 이는 이미 덮개 갈래가 여럿임이 깔려 있어, 그 여럿 가운데 '하나의 덮개'라는 뜻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머리털(만)이 덮개라는 아퀴”는 잘못입니다.


암이의 긴 머리털은 실제 덮개를 갈음하여 빌기앞마알을 아니하는 여느 때에 제바탈스러운 덮개 구실을 할 뿐입니다. 하나님*께 거나 그분의 마알씀을 앞마알할 때 암이는, 제 몸의 한 어섯제바탈스러운 덮개가 아니라, 덮천 갈래로서 누가 보나 또렷한 실제 덮개로 덮어야 하며, 수이는 머리에 무엇이든 (그것이 덮천 갈래든 모자 갈래든) 실제로 덮여 있다면 벗어야 합니다.


암이의 긴 머리털이 하나님* 앞에서 덮는 그 덮개로 주어진 것이라면, '긴 머리털'이 주어졌다는 것도 이상하지만(15 절에는 그냥 '머리털'이 주어짐이라 하셨음), 그 덮어 가리는 것이 빛쁨(자랑)까지 될 까닭이 없습니다, 만족스러움을 줄 수는 있지만 마알입니다(여기에 대해서는 앞 글에 풀어 적었음).


5. 내세움: '암이의 머리 덮기'는 틀울이 아니라 내리버릇인데, 그것을 '쓰개'라 하며 쓸 것을 강요하는 것은 율법적이다.


되가리: 과연 틀울내리매내리버릇이 어떻게 다른지는 먼저 올린 글 《새 유언*에서 찾은 규례(ordinance), 전통(tradition), 풍습(custom)》을 참고하십시오. 이 쓰마알들은 수학 쓰마알나 컴퓨터 명령어처럼 뜻매김이 에누리 없는 그런 쓰마알들이 아닙니다. 쓰마알을 지나치게 울치지 말고 마알씀의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또한 율법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마태복음 5:17~19). 우리는 틀림없이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자유롭지만, 율법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 주*님의 마알씀을 따르려 하는 것을 자신의 헤아림과 다르다 하여 함부로 율법적이라 판가름해서도 안 됩니다. 자무질이나 저녁잔치지잇도 율법적입니까?


또한 16 절에서 “그러한 내리버릇이 없습니다”라는 마알씀이, 바울*님이 하라 하신 그것이 내리버릇이라는 터무니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가래는 일, 또는 거나 앞마알할 때 수이가 머리에 덮개를 쓰거나 암이가 안 쓰는 잘못된 지잇을 가리킬 뿐입니다. 그 하라심에 따른 바른 지잇들이 내리버릇이라는 터무니는 없습니다. 애지음 고루차례에 따르는,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하는 바르고 마땅한 지잇들을 내리버릇이라 하며 그 무게를 줄이려 애쓰지 마십시오. 바울*님의 강한 마알투는 그것이 바이 가벼운 문제가 아님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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