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책*의 '머리 덮개'는 '머리털'인가 '쓰개'인가?



풀빛 글씨 위에 쥐돌이 더듬이를 올리고 조금 있으면 도움마알이 뜹니다.



7. 마무리


지금까지 고린도전서 11:3~16 의 '암이의 머리 덮개'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살펴 보았습니다. 그것이 과연 19세기에 비롯되어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힘을 얻은 어떤 내세움처럼 '암이의 긴 머리털'인지 살펴 보았지만, 그러한 내세움은 맞질렸고 '암이의 머리 덮개'는 누구나 쉽게 헤아릴 수 있는 덮천과 같은 쓰개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제바탈스러운 덮개인 긴 머리털이 여느 때에 암이빌기 덮개(쓰개)를 갈음하고 있으므로, 빌기앞마알을 할 때에도 갈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덮개를 긴 머리털이 갈음할 수 있다면 5 절에서 “(쓰개로) 덮이려 않거든 또한 (머리털도) 깎게 하라” 하지 않고 “(쓰개로) 덮이려 않거든 차라리 머리털을 길게 기르게 하라”고 적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덮이려 않거든 또한 깎게할 것이요”가 아니라 “덮이려 않거든 차라리 머리털을 길게 기를 것이요” 이렇게 마알입니다. 머리털을 기르면 덮개를 쓰지 않아도 그 덮개를 머리털이 갈음할 수 있을 터인데 왜 굳이 강한 마알투로 “깎게하라”고 하셨을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참일 바울*님은 “암이가 덮이려 않거든”이라는 글에서 그 암이의 머리털이 길든 짧든 상관 않고 있습니다. 다시 마알해 그 암이가 긴 머리털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덮어 쓰려 않거든 또한 깎게 하라는 것입니다. 긴 머리털이 아무리 제바탈스럽게 덮개 느낌을 줄 지라도 그것은 실제 덮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덮개를 덮어 쓰는 것이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닌데, 그것을 실제 덮개가 아닌 제바탈스러운 덮개일 뿐인 머리털로 갈음하려는 것은 지멸있지 못한 것입니다.


다시 간추립니다. 수이가 참으로 머리를 덮지 말고 드러내야 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그으리매빛쁨이기 때문이지만, 암이는 다만 수이빛쁨이기 때문에 드러내지 말고 덮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쁨(수이)은 드러나야 하고 수이빛쁨(암이)은 덮여야 합니다. 수이빛쁨암이를 (그미의 머리를) 덮는 데는 마땅히 그미빛쁨인 긴 머리털도 들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쁨만 드러나야 하는 일됨새에서 암이빛쁨인 긴 머리털이 덮개라며 드러내게 하는 것은 바울*님이 뜻한 바를 크게 그릇 헤아린 것일 뿐 아니라, 맑은 눈으로 마알씀을 읽고 있는 거룩한 이들에게 걸림돌을 놓는 것입니다.


암이의 머리 덮개가 '머리털'이 아니라 덮천(veil)과 같은 쓰개라는 터무니는 이제까지 살펴 본 대로 고린도전서 11 장뿐 아니라, 옛 유언*에, 케이제이비(KJB) 초판 도움마알에, 그리고 거룩님들의 역사에, 마지막으로 우리와 똑같은 노아흐*의 뒤따아들이면서 누리의 모든 겨레에게 많은 없신여김을 받고 있는 검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암이의 머리 덮기'는 가램거리가 아닙니다. 점점 어지러워지고 시나브로 더 악해져 가는 누리 속에서, 마알씀을 깊이 새겨 그 뜻을 그릇됨 없이 잘 헤아리고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 죽어 마땅한 죄투성이에서 주*님의 핏값으로 건져졌을 뿐 아니라, 가없는 삶을 받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름을 허락 받은 이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그동안 이끌어 주시고 빛을 비춰 주신 주*님의 도탑고 너그러운 베푸심이 고맙고 고맙습니다. 또한 이 마알씀을 위해 오래 참고 빌기와 물질로 도와 주신 형제자매들에게 고마운 마음 전하며 주*님이 에움해 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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