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청양을 오갈 때 라디오를 틀면 우리는 거의 케이비에스 제1에프엠 클래식 방송을 듣습니다.   서울·경기 지역은 거의가 93.1MHz(메가헤르츠)이지요.  그러나 방송 채널은 지방마다 다릅니다.  지난 해날 서울·에서 형제자매들과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클래식 방송 채널을 찾다가 어떤 목사의 설교가 들리기에 잠깐 들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8 - 개정)”라는 마알씀을 가지고 하는 설교였습니다.  그의 설교는 대강 이렇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부부 사이에 서로의 허물(약점?)을 들추지 말고 덮어 주십시오.  어차피 사람은 사람이 고칠 수 없습니다.  고쳐지지도 않는 것을 괜히 건드려서 불편하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서로 상대방의 많은 허물/약점을 그냥 덮어 주십시오.  그것이 사랑입니다.”  또렷하지 않은 기억을 더듬어 썼으므로 표현은 조금 달라 졌을지 모르지만 소옥새(내용)는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언뜻, 그분의 설교가 나날살이에, 특히 부부싸움이 잦은 이들에게는 꽤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마알씀을 읽을 때 한 번도 그렇게 읽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설교가 참으로 이상하게 여겨졌습니다.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를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니라”로 이해할 수도 있을까?  사람의 약점도 죄일까?  상대방의 죄를 덮어 주는 것이 사랑인가?  어쩌면 그동안 내가 잘못 읽었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수많은 죄를 덮어 줄 수도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좋은 것인가?  그래서 과연 그러한 지 집에 돌아와서 거어룩책(성경)을 살펴 보았습니다.  1페트로 4장 마알씀의 흐름에서는 실마리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킹·제임스·판 거어룩책의 마알씀을 보니 그 목사가 틀렸음이 더욱 또렷하였습니다.

And above all things have fervent charity among yourselves: for charity shall cover the multitude of sins. - I Peter 4:8 - KJV
그리고 무엇보다 그대들은 서로 뜨거운 사랑(charity)을 지닐지니, 사랑은 수많은 죄를 덮을 것입니다. - 1페트로 4:8

눈여겨 볼 곳은 이것입니다.  “shall cover (덮을 것입니다)”.  올적 때매김(미래 시제)입니다.  곧 앞으로 올적에 그렇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랑이란 -지금-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 아니라 '사랑(charity)은 -앞으로- 수많은 죄를 덮을 것'이라는 마알씀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죄를 덮는 것'은 사랑의 과정이나 사랑의 하나가 아니라 사랑의 끝맺이(결과)입니다.  이 누리에서도 사랑으로 많은 죄가 덮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이 마알씀이 가리키는 것은 이제 곧 닥칠 주·님의 심판 때에 대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내게 용서를 바라는 맞치(상대)를 용서하는 것 말고 상대의 죄를 그냥 덮어 주는 것은 멸망의 길을 가는 그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내 형제가 죄를 지어 멸망의 길을 가는 데 그냥 덮어 주는 것이 사랑이겠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주·님은 그 목사의 가르침과는 달리 일러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5  또한 만일 네 형제가 네게 잘못을 저지르면, 가서 너와 그만 따로 있을 때에 그의 허물을 마알해 주라.  만일 들으면 네 형제를 얻은 것이라,
16  그러나 만일 듣지 않거든 너와 함께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마알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마알도 무시하여 듣지 않거든 교회에게 마알하고, 교회의 마알도 무시하여 듣지 않거든 이교도나 세리 같이 여기라.

1티뫁시 5:20
죄짓는 이들은 모든 이들 앞에서 꾸짖어, 다른 이들도 두려워하게 하라.

1요한 5:16
어떤 이가 죽음에 이르지 않는 어떤 죄 짓는 제 형제를 보면, 그는 달랄 것이요, 그러면 그분이 그 형제에게 삶을 주시리니, 곧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 짓는 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어떤 죄가 있는데, 이를 위해 나는 그에게 빌라고 하지 않습니다.

죄를 그냥 덮어 주는 것은 바이(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이겠습니까?  1코린쏘(고전)13장에 자세히 풀어 주셨습니다.  “내가 사람이나 천사의 언어로 마알할지라도, 사랑(charity)이 없으면...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 물론 이 마알씀에도 '사랑은 죄를 덮어 주는 것'이라는 마알씀은 없습니다.  그리고 약점과 죄는 갈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약점은 일됨새에 따라 덮어 주는 것이 좋을 수도 있고 일러 주어 고치도록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습니다.  내 눈의 들보를 먼저 빼 버리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