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일/한겨레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우즈베크·키르기스 등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자신들을 ‘고려사람’, 자신들이 쓰는 말을 ‘고려말’이라 일컫는다. 이들 선조들이 생활이 어려워 러시아 연해주와 아무르주 등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게 1864년부터이니 올해가 만 140년이 된다. 이들은 그곳에 정착하여 비교적 짧은 기간에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됐지만, 1937년 소련의 강제 이주정책 탓에 머나먼 지금의 중앙아시아로 끌려와 새 터전을 마련한다.

고려말은 주된 바탕은 백여년 전의 함경도 지역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백년이 훨씬 지났지만, 당시 우리말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어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지금 말과 견주면 말소리나 낱말이 꽤 달라, 백년 새, 말이 많이 바뀌었음을 볼 수 있다. “딸게로 보냈소” “나느 재비 집으로 갔소” “씁둘 더 좋소”는 각각 “딸에게 보냈어요” “나는 내 집으로 갔어요” “쓸수록 더 좋아요”란 뜻인데, 조사 ‘에게’나 ‘는’ 대신 ‘게로’나 ‘느’가, ‘쓸수록’은 ‘씁둘’로 쓰였다. 또 대부분 ‘-소’로 말을 끝맺고 있다. “아슴채이오”는 “고맙습니다”란 뜻이며, “미내/전혀, 헐히/쉽게, 내겹다/힘들다, 드티다/움직이다, 옌치/나이, 아매-할머니, 바꿈지-소꼽장난” 등도 색다른 말들이다.

이제 고려말을 할 줄 아는 인구는 크게 줄었다. 몇 안 되는 노인들만 쓰고 있다. 그대로 두면 절멸할 판이다. 우리말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귀한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셈이어서 보전 대책이 절실하다. 지난주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열린 러시아 이주 140돌 기념학술회의도 이 문제를 논의했다.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뜻에서 고려말 보전에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권재일/서울대교수·언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