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김-수업
우리 모임 공동대표

뛰다달리다

    광복 뒤로 얼마 동안은 초등학교 운동회 때면 “달려라! 달려라! 우리 백군 달려라!” 하는 응원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육이오 동란을 지나고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뛰어라! 뛰어라! 우리 백군 뛰어라!” 하는 소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즘은 온 나라 젊은이가 너나없이 '뛰다'와 '달리다'를 올바로 가려 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아예 두 낱말의 뜻이 본디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은 국어사전들이 이들 두 낱말의 본디 뜻을 그런대로 밝혀놓았다는 사실이다. '뛰다'는 “있던 자리로 부터 몸을 높이 솟구쳐 오르다.” 또는 “몸이 솟구쳐 오르다.”, '달리다'는 “'닫다'의 사동사” “달음질쳐 빨리 가거나 오다.” 또는 “빨리 가게 하다.” “뛰어서 가다.” 이렇게 풀이해 놓았다. 두 낱말의 뜻이 헷갈릴 수 없을 만큼 다르다는 것은 짐작할만하다. 하지만 국어사전에서도 '달리다'를 “뛰어가다” 또는 “뛰어서 가다”라고 풀이해서 '달리다'와 '뛰다'가 서로 헷갈릴 빌미를 말끔히 치우지는 못했다.

    '뛰다'는 본디 “제 자리에서 몸을 솟구쳐 오르는 것”이고, '달리다'는 본디 “빠르게 앞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하면 또렷하고 올바르다. 하지만 이런 본디 뜻을 올바로 가린다 해도 쓰임새에서는 조심스레 가늠할 일이 없지 않다. '뛰다'는 '뛰어 오다'와 '뛰어 가다' 또는 '뜀박질' 같은 쓰임새가 있어서 '달리다' 쪽으로 자꾸 다가오기 때문이다.


싸우다다투다

    국어사전은 '싸우다'를 물으면 '다투다'라 하고, '다투다'를 찾으면 '싸우다'라 한다. 이들과 비슷한 '겨루다'도 있는데 그것도 '다투다'라고 한다. 참으로 국어사전대로 '싸우다'와 '다투다'가 서로 같고, '겨루다'는 '다투다'와 같다면 셋은 모두 같은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 낱말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생겨나서 오늘까지 쓰이고 있겠는가? 본디 다른 뜻을 지니고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서로 달리 쓰였으나, 걷잡을 수없는 세상 소용돌이를 살아오느라고 우리가 본디 뜻을 잊어버리고 헷갈리는 것일 뿐이다.

    '겨루다'는 미리 마련한 가늠과 잣대를 세워놓고 힘과 슬기를 다하여 서로 이기려고 맞서는 노릇이다. 맞서는 두 쪽이 혼자씩일 수도 이고 여럿씩일 수도 있지만 가늠과 잣대는 두 쪽을 저울같이 지켜주게 마련이다. 한 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반반한 처지를 만들어주고 오직 힘과 슬기에 따라서만 이기고 지는 판가름이 나도록 한다. 놀이와 놀음의 바탕은 본디 겨루기에 있고, 겨루기를 가장 두르러지게 내세우는 것은 아무래도 운동경기다.

    '싸우다'와 '다투다'는 둘다 공평하도록 지켜주는 가늠과 잣대란 없고 어떻게든 서로 이기려고만 하면서 갋고 맞서는 노릇이다. 그런데 '다투다'는 목숨을 걸지도 않고 몸을 다치려고도 않아서 거의 삿대질이나 말로써만 맞선다. '싸우다'는 다투는 것을 싸잡고 몸을 다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목숨마저 떼어놓고 맞서는 이른바 전쟁까지도 싸잡는다.


실린데:『우리말 우리얼』제51호(2006.10), 33~35쪽. ※ 글쓴이의 허락을 얻어 옮긴 글임.